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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inelverse 남자아이 2024. 4. 17. 17:23

 

그 애는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매미나 나무늘보처럼 달라붙어있는 것이 아닌, 무릎이 위를 향하게 기둥이 다리를 걸치고 있는 불안정한 자세였다.

"왜 그러고 계십니까."
"이러면 머리에 피가 쏠리거든."

답이 안 되는데요. 낸시의 눈썹이 불만스러운 듯 들썩거렸다.

"내려가?"
"...네."
"왜?"
"눈에 거슬립니다."

나무 위에는 리환이 있다면, 아래에는 낸시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대로 책을 산처럼 옆에 쌓아두고 나무 그늘에 앉아 읽어내리던 중이었다. 누가 먼저 왔느냐를 따지자면 리환이 먼저기야 했으나, 낸시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 있었으니, 누가 먼저 비켜야할지를 따지자면 모호했다. 그건 잘 분리되어있던 자리를 멋대로 침범한 쪽이 리환이라는 의미였으니까. 
그레서인지 가뿐하게 내려온 리환도 낸시에게 무어라 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입을 벙긋이는 대신 보는 이가 불안해지는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긴 했지만.

"낸시."

리환은 8분 동안만 침묵을 지켰다. 정확히 낸시가 한 장을 다 읽고, 다음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려할 쯤이었다.

"이건 무슨 책이야?"
"센티넬의 유전자 배열에 관한 연구입니다."
"꽤 옛날 거네."

그의 손이 멋대로 책의 뒷표지와 속지 사이를 갈랐다. 맨 뒤에 쓰인 출판 일자를 보려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틀린 데가 많긴 합니다."
"새 거 읽으면 되는 거 아냐?"
"제대로 인용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동그랗게 입을 벌리며 리환은 그렇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그가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건만, 큰 흥미는 없는 낯이었다. 좀 더 삐뚤게 보자면 이미 알고있는 답이었던 듯도 했다.
다음 질문이 이어지지 않고 따가운 시선만이 도로 달라붙기 시작하자, 낸시는 멈춰 두었던 눈동자를 움직여 다시 책을 읽어내렸다.
오후의 바람은 선선했다. 볕이 유난히 좋은 날이었지만, 나무 그늘 아래에 앉은 덕에 두 사람에게는 적당한 온기로 느껴졌다. 추위를 잘 탄다며 낸시에게 투정 부린 적이 있는 리환도 오늘은 달리 귀찮게 굴 생각이 없어보였다. 낸시의 메모가 빼곡히 적힌 종이 때문 같기도 했지만, 이유가 어떻든 낸시로서는 독서를 이어나가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옆자리를 채운 남자아이의 존재가 익숙해진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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