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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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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the RECORD 심술 2024. 4. 17. 17:29

 

"이든?"

애거서의 부름에 샐러드를 늘어놓던 이든의 손이 멈추었다.

"응?"
"조금… 많지 않아요…?"

아침 촬영이 끝나고, 두 사람에게는 오후 촬영이 시작하기 전 '간단한' 식사를 할 만한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씬이 먼저 끝난 쪽은 이든이었기에, 늘 같이 끼니를 떼우는 사이였던 만큼 그가 점심거리를 사오는 것이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촬영장 입구까지 가져온 사람은 이든이 아닌 그의 매니저였기에, 나르는 것만 도왔다는 점에서 사왔다 표현해도 될지는 모호했지만.
도시락 용기에 담긴 갖가지 샐러드와, 카페에서 금방 사온 것으로 추정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애거서는 눈동자를 굴려 그녀의 앞에 펼쳐진 용기들을 바라보았다. 고기가 들어간 것, 닭가슴살이 들어간 것, 어떻게 구해온 것인지 연어가 포함된 것까지... 한 칸은 통으로 과일로 채워져있었으나 업무 중에는 이든도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와 함께 먹는다 치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양이었다. 게다가 왜 그의 몫인 음료는 없는 것일까. 애거서의 얼굴에 의아함이 잔뜩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대충 준비해달라했는데, 직원이 오해를 했나."
"…대충?"

한 입을 먹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었다. 디너 타임, 특히 주말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어려운 곳으로 소문난 레스토랑의 샐러드와 맛이 똑같지 않은가. 고객의 프라이버스도 잘 보장해주는 장소였기에 지난 달 이든이 데려갔을 때 입맛에 꼭 맞다며 즐겁게 레스토랑 데이트를 한 기억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이 분명했고, 애거서는 단 한 입을 먹자마자 나무로 된 포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뭐 잘못 했어요?"
"…그래 보여?"

애거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든은 퍽 곤란한 기색으로 제 턱을 쓸더니, 애거서의 옆으로 나란히 놓인 의자에 자리를 붙였다.

"…아까 당신한테 좀, …심술…을 부린 것 같아서."

솔직하게 굴고 싶은 마음과, 감추는 일에 능한 그의 성질이 맞부딪힐 때면 보이는 버릇이 나오고 있었다. 대본을 몸에 익히는 것처럼 말의 사이가 드문드문 끊기고, 마침표나 반점을 찍는 위치가 유독 명확하게 귀에 와닿았다. 

"무슨 심술 말이에요?"
 
옅은 미소가 이든의 얼굴에 스치었다. 못 당해내겠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모를 것 같아서 티 내기 싫었는데 말이지."

어영부영 넘어간 것의 대가는 컸다. 구태여 애거서가 곤란해할 만한 말을 꼽아 뱉은 탓일지도 몰랐다. 억지로 한 발 물러서게 만들어놓고 되려 미안해한다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아까 내가 했던 말 중에 별로였던 거 없었어? 일부러 그런 거였는데, …특히 관심, 있냐는 말."

말의 끝이 수그러들었다. 내가 당신을 의심하는 뉘앙스였잖아, 그렇게 항변하는 듯도 했다. 이든은 불현듯 내뱉은 말의 끝이 이번에는 진실되게 꺾여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은 눈앞의 그녀가 언짢아하길 바랐다는 것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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