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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26 L -2 2022. 3. 16. 16:40

 

  "리브레인이라면 일전에 아즈카반에 수감되었다가 탈옥 이후, 무죄로 재판결 되었던 연구원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듣기로는 그 이후로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아, 대부분 그리 알고 계시죠. 그럼 일단 그들이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겠군요."

  L은 깍지 껴 잡고 있던 손의 앞뒤 위치를 바꿔 다시 깍지를 꼈다.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다리를 꼬고 있는 자세는 들켜선 안 될 이야기를 하는 이치고는 오만해 보였다. 만일 기자가 무명이 아니었더라면 L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동시에 그를 오러에게 넘기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을 것이다. 아마 L은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자신 대신 세상에 말을 옮겨줄 이야기꾼을 골랐을 것이다. 단의 옆에서 오랜 세월 근무하며 처음으로 배운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람을 보는 안목. 반대로 말하자면 알아서 눈을 키우지 못했다면 그 역시 하워드 가에서 가차 없이 썰려 나갔을지도 모른다. 아니, 썰리고도 남았다. L은 기자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목을 가다듬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워드 가의 문은 독특한 양식을 띄고 있었습니다. 문고리에 마법이 걸린 것은 아니나, 항상 같은 형태의 잠금장치가 들어가 있었죠. 마법으로 손쉽게 딸 수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만… 그 잠금장치는 젊은 가주가 된 하워드가 고안해낸, 사용인에게 준 일종의 배려였습니다."

  소파에 앉아있던 L은 문 앞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연 채로 낡은 서재 문의 문고리를 잠갔다.

  "문을 잠그면 문고리를 돌리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문고리가 다 돌아가기 직전에 거치적거리는 소리가 나고요. 절그럭거리는 소리, 아실 겁니다. 문을 잠그고 음흉한 짓거리라도 하던 중에 그 소리가 나면 화들짝 놀라거나 흥이 깨지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 클리셰로도 자주 쓰이지 않습니까?"

  기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을 하자 L이 아주 귀중한 것을 양보하는 사람처럼 고상한 동작으로 문고리에서 손을 떼었다.

  "직접 잡아보시죠."

  "문고리를 말인가요?"

  "네. 잡으면 바로 아실 겁니다."

  문고리는 말하지 않는다면 방금까지 다른 사람이 잡고 있었는지 짐작도 못하게 차가웠다. L이 장갑을 끼고 있기 때문인지. 기자는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이 문이 닫혀있었다면 자신이 결단코 열 수 없으리라는 사실 또한 알 수밖에 없었다. 그 조그만 쇠붙이가 문에 단단히도 붙어 있어 이 문을 열려면 문고리를 잡아 뜯어야만 한다. L의 말대로 잡기만 하면 바로 알 수 있었다.

  "원리가 어떻게 되는지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머글들의 기술이라더군요."

  "기술이라, 신기하네요. 일반적인 문고리보다 조금 무거운 것도 같고. 묵음 처리가 된 건가요? 아예 돌아가질 않는군요."

  L은 웃으며 잠금장치를 풀고, 서재의 문을 다시 닫았다.

  "그런데 이게 왜 배려죠. 오히려 문을 열 때마다 꺼림칙할 것 같은데요"

  "기자님과 달리 저희는 타인의 거처가 직장이니 말입니다. 열지 말아야 할 문을 열었을 때만큼 꺼림칙할 일도 없죠. 꺼림칙하다…… 아니군요. 그런 말로 그칠 수 있다면 행운이겠네요. 목이 날아갈까 두려워하는 것보다야, 죽을 일은 없잖습니까."

  "…문 하나를 열었다고 죽이는 것이 보편적인가요?"

  "보편적인 이야기 듣자고 여기에 오시진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말문이 막힌 기자는 고개를 주억이며 속기 중인 펜을 바라보았다. L은 빙그레 웃곤 마저 입을 열었다.

  "하워드 가의 문은 대부분 열려있었습니다. 사실 잠금장치가 그리 쓸모있는 장치도 아니지 않습니까. 성인이 되어서까지 문 하나 열지 못하는 마법사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문을 잠그는 이유가 잠그는 것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건가요."

  "예리하시군요. 금방 살짝 실망했던 부분이 조금 메워진 듯합니다. 다행히도 제가 머리가 없는 사람을 부른 건 아닌 모양이군요."

  "방금의 언사가 무례하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L의 태연한 모욕에 기자가 발끈했지만, L은 자신의 말이 그에게 어떠한 작용을 낳든 상관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낡아빠진 성 안에서는 저의 언행이 기자님보다 우위라는 것도 알고요. 그래서 말을 잇자면, 문을 잠그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속기 중이던 펜이 멈췄다. L은 타고난 모사꾼이라서가 아니라, 중요한 문장 전에 뜸을 들여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나올 문장이야 뻔하다. 이야깃거리는 으레 클리셰 덩어리거나, 비틀린 클리셰 덩어리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루즈함이야말로 듣는 이로 하여금 애타게 만드는 법이었다. 애끓는 기자를 두고 L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손대지 않던 찻잔을 들어 입을 적셨다.

  느릿한 한 모금이 끝난 후에야 펜은 뒷문장을 적을 기회를 얻었다.  

  "이 안에서는 지금 중요한 정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 누구든, 어떠한 일이든, 결코 문지방을 넘어서는 안된다. 일종의 경고문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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